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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자와 혀

<리뷰>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저, 욕망을 나누자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18.

 

 

 

김두식 저서, 욕망해도 괜찮아는 무려 책 표지가 빨간색이에요:~)

빨간색은 19금, 혹은 신체적인 욕망의 표출 이라는 기호(?)로 만인들이 이 책을 보는 순간 너 왜 그런 책은 보냐라던가 이런 식의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빨간색은 야한책. 이런 류. 사실 실제로도 신체적인 욕구,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또 그런 이야기만 다룬다고 하기에는 좀 어려운 부분도 있는. 마치 저자는 교수로 점잖은 사람으로 읽혀야 했던 그래서 남자로서의 성을 꼭꼭 숨기고 살아야하는. 그런 괴리감이 담긴 책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에 그런 모순적인 부분에 대해서 현상에 대해서 정말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나 해요

 

평:

 

창비가 기독교 단체였나요? 이렇게 주관적이고 불편할 수 있는 종교적인 논점.

기독교적인 가치관만 없었다면, 훌륭했을 내용. 특히나 여성성에 대한 혹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굉장히 불쾌.

불편. 

 

 

 

 

 

 

 

 

 

*본문 들여다보기


 

1. 거울부터 들여다보기: 욕망의 인정편 < '오바'하는 아저씨들의 숨길 수 없는 욕망>에서 어찌나 통쾌하고 웃기고 긍정이 가능했는지 몰라요. 남성들이 불편한 내용이겠다 싶어요. 술집이나 어디든 중년의 남성들은 자신의 위치를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면서 '김회장'도 찾고 '박의원'과도 친분을 과시하고.  이상한 과시 욕구.  그 이후의 내용은 참 따분하다 싶을 정도로 나는 과시욕구가 내재되어있는 걸 감추는 사람이 아니야 라면서 은근한 과시욕구를 비춥니다.

 

1. <정직하게 거울을 들여다보면>40p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권력의지'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그 눈덩이를 자기가 굴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누군가 자기 안의 보석을 발견하고 눈덩이를 굴려주길 바랍니다."

 

 

 

그것은 정말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내재되어 있는 욕망이 아닐까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보석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지요. 저는 지인들에게도 얘기하지만 성향이나 정말 청렴한 지의 여부를 배제하고나서 청렴결백한 인사를 싫어합니다. 쓰다보니 조금 놀랐지만 '싫어한다'는 표현은 조금 솔직했고, 흠하나 없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진 않아요. 제가 흠이 있어서 겠지만 오히려 흠이 있는 사람들이 흠이 있는 사람을 더 싫어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니까 욕망 표출에 '보수는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진보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권력을 포기한 사람들'이라고 표현 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여러 욕망 중에 명예를 선택한 것일 뿐, 무슨 성인군자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닙니다. 그런데도 명예를 위해 돈과 권력을 포기한 사람들은 이상한 자부심을 갖습니다. 뭘  포기했는지 객관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는데도 그렇습니다.

                                                         41p

 

 

 

자신의 욕망은 잘 숨기는 대신 남의 숨겨진 욕망 표출에만 눈이 빠알게진 인사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욕망표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받아들이자고 얘기합니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 49p에 있습니다. 욕망은 고유의 것이 아니라 모방욕망이랍니다. 예로는 엄친아엄친딸. 이웃이 없으면 욕망도 없을거라는 말에 그렇네 해버렸어요. 이것이 만장일치적 폭력으로 확대화 되고 마지막으론 '희생양 메커니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남성들이 사정을 통해 느끼는 평화를 이야기 하는데 정말 그럴까요? 허무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고 들었는데 말이에요

 

김규항 선생의 말을 인용합니다.

 

 

 

보수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넣고 진보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넣는다

우파부모는 아이가 일류대생이 되길 소망하고, 자퐈부모는 아이가 좌파적인 일류대생이 되길 소망한다.

 

 

 

사실 이 파트는 신정아씨를 위해 인용한 여러의 것들이 나열되어있습니다. 참 애매한 게, 잘못했으면  잘못한 것까지만 탓하면 되고 그 이후의 것들은 우리가 물을 것이 아니다라는 것에는 정말정말 진심으로 동의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시 발생합니다. 어디까지를 잘못으로 봐야하고, 어디까지를 우리가 넘어가면 안되는 선인지가 애매합니다. 예를 들면 도박사건에 연루된 연예인. 형을 다 살고 나왔다 하더라도 다시 방송에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도덕성의 잣대때문이지요. 저 사람도 저렇게 멀쩡하게 나오는데 라는 생각과 그것이 큰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들에 대한 염려. 잘못은 벌을 받고 끝난 상황. 그렇지만 도덕적 잣대가 남은 현재.

 

 

 

사람들은 자기 욕망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하며 더 맹렬한 사냥을 벌입니다. 그 과정에 분명한 쾌감이 있습니다(62p)

 

그 외에 최영미 시인의 '감방에서 한 이십년 썩은 뒤에 여우(지식인)된 돼지'이야기, 홍준표의 '사실상 승리' 등등

 

 


 

분명히 이 책은 마초성을 지향하지만 마초가 아닌 술취한 중년들의 모임에서나 할 법한

찌질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마이 뉴스에 남편이 잠자리 요구하면 싫어도 해줘라라는 글이 실렸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여러분이 내키지 않더라도 아프거나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은 한 남편이 원할 때 그냥 해주라"라는 강의가 있었답니다. 그런 내용을 저자는 평생 들어왔기때문에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합니다. 저자는 여성은 순종적이여야 한다는 근본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성적일래야 이성적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아버지세대를 들먹입니다. 여성의 순종을 강요하고 원할 때는 해줘야하는. 그것이 아버지 시대에서 말하던 기생이나, 씨받이가 아닙니까. 혹은 아버지의 폭력성에도 '순종하는 어머니'.

 

왜 그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걸까요.